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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고랜드 공화국[1]
República de Yugoland | جمهورية يوغولاند
Republic of Yugoland

Nueva Hasioñ
웨스타시아의 괴뢰국
파일:괴뢰의괴뢰.png
파일:괴뢰의괴뢰의휘장.png
총독기[2][3]
휘장
희망과 의지는 우리가 하늘을 나는 날개이다
Spes et Voluntas Sunt alae Quae nos Volare Sinunt
1958년 1월 9일 ~ 1984년 7월 18일
(26년 6개월 18일)[4]
성립 이전
독립 이후
유고랜드
국가
영원한 영광을 향하여!
수도
시에타(Cieta/سييتا)
언어
스페인어, 한국어, 아랍어
문자
로마자, 한자, 한글, 아랍 문자
종교
정교분리
민족 구성
한국인[5], 웨스타시아인[6], 아랍인
정치 체제
공화제[7](1958~1979)
→ 군사독재(1980~1984)
국가원수
유고랜드 공화국 대통령
통치기관
통치수반
주요 총독
[ 펼치기 · 접기 ]
초대 호세 비팔 바하몬테스[8]
제2대 라파엘 디발로 비산테르[9]
제4대 호아킨 마누엘 토레스
제 5대 조엘 지오바니 사스트레[10]
제 8대 안토니오 헤르만 바스타이치[11]
제9대 비센테 차비 살바테르[12]
주요 사건
[ 펼치기 · 접기 ]
1958년 웨스타시아의 유고랜드 괴뢰화
1960년 8.29 시민총궐기
1963년 사파인 학살
1973년 유고랜드 총독부 방화
6.13 시민혁명
2차 랜드대전 발발
1977년 유고랜드 총독부 2차 방화
1978년 아리츠 S. 라몬 피살
1979년 아부쿠찬 수용소 완공
1983년 마테르 전쟁 발발
1984년 독립
행정구역
4부→
6시 11군 41관구 (1984년)
통화
유고랜드 달러 → 웨스타시아 크로네
현재 국가

1. 개요2. 역사
2.1. 성립 배경2.2. 성립 이후
3. 통치 체제
3.1. 국가 체제3.2. 유고랜드 총독부
4. 정치
4.1. 역대 유고랜드 공화국 총독4.2. 역대 유고랜드 공화국 대통령
5. 평가
5.1. 괴뢰국으로서의 성격5.2. 정치적 억압과 권위주의5.3. 전쟁, 그리고 군사적 종속5.4. 경제 발전5.5. 문화와 언어5.6. 사회적 통제와 시민생활5.7. 독립 이후5.8. 총평
6. 사건 사고7. 미디어8. 둘러보기

1. 개요 [편집]

유고랜드 공화국(República de Yugoland[13], جمهورية يوغولاند)은 1958년 1월 9일부터 1984년 7월 18일까지 존속한 웨스타시아의 괴뢰국이다. 1956년 11월 혁명 이후 웨스타시아의 군사적 개입으로 수립되었으며, 명목상 독립국의 형태를 유지했으나 웨스타시아가 임명한 총독을 통해 사실상 식민지에 가까운 통치를 받았다. 이후 1차 랜드 전쟁, 2차 랜드 전쟁과 마테르 전쟁을 거치며 존속하다가 1984년 웨스타시아의 붕괴와 함께 독립하였다.

2. 역사 [편집]

2.1. 성립 배경 [편집]

1956년 유고랜드에서는 범황연맹과 군부 세력을 중심으로 한 세력이 기존 정부를 전복하는 11월 혁명을 일으켰다. 당시 유고랜드는 건국 이후 여러 정치 세력과 지역 세력 사이의 갈등이 이어지고 있었으며, 특히 군부와 보수 성향 정치세력은 기존 정치체제에 대한 불만을 강하게 제기하고 있었다. 혁명 과정에서 범황연맹을 이끌던 류손영을 중심으로 한 세력이 정권을 장악하면서 유고랜드의 정치적 혼란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혁명으로 수립된 정권은 국내에서 충분한 정치적 기반을 확보하지 못했고, 경제와 군사 분야에서도 외부의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이에 류손영을 비롯한 혁명 세력은 주변 강대국과의 관계를 강화하려 했으며, 그 과정에서 웨스타시아와의 협력 관계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웨스타시아는 처음부터 유고랜드를 직접 점령하기보다는 새로운 유고랜드 정권과 협력하는 방식을 택했다. 양측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류손영 정권은 정권의 안정과 군사·경제적 지원이 필요했고, 웨스타시아는 유고랜드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랜드해협의 전략적 요충지를 확보할 필요가 있었다.

양국의 관계가 가까워지면서 웨스타시아의 군사 및 정치적 영향력은 유고랜드 내부에서 점차 확대되었다. 이후 웨스타시아는 유고랜드의 정치적 혼란과 취약한 군사력을 이용하여 직접적인 군사 개입을 결정하였다. 유고랜드를 완전히 병합하는 대신, 기존 국가기관의 형식을 일부 유지하면서 웨스타시아의 영향력 아래 두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효율적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웨스타시아가 유고랜드에 개입한 데에는 당시 유고랜드가 가진 지정학적 가치도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유고랜드는 랜드해협 남부에 위치하면서 랜드해에서 콘스탄티노폴을 거쳐 포르틸락 해협으로 이어지는 해상 교통로에 가까웠으며, 서쪽으로는 고랜드, 동쪽으로는 사비에트와 접하는 전략적 위치에 있었다. 북쪽으로는 루이나와 해상을 사이에 두고 있어 당시 랜드해협의 주요 세력들이 활동하는 지역과 가까웠다.

특히 1950년대 후반은 포르틸락 해협을 둘러싼 열강 간의 긴장이 높아지면서 1차 랜드 전쟁의 발발이 가까워지고 있던 시기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고랜드에 대한 영향력은 웨스타시아가 랜드해협의 해상 교통과 주변 정세에 개입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었다.

결국 웨스타시아는 유고랜드를 병합하기보다는,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유고랜드를 직접 통치하는 데 따르는 행정, 군사적 부담을 피하면서도 전략적 이익을 확보할 수 있는 괴뢰국 형태의 간접 지배를 선택하였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1958년 유고랜드 공화국이 수립되었다.

2.2. 성립 이후 [편집]

3. 통치 체제 [편집]

3.1. 국가 체제 [편집]

유고랜드 공화국은 명목상으로는 독립된 공화국의 형태를 유지하였다. 국가원수와 정부기관, 의회, 사법기관 등의 제도가 존재했으며 헌법과 법률 역시 별도로 운영되었다. 또한 유고랜드 공화국이라는 국호와 국기, 국가 등의 국가적 상징도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국가기관들이 실제로 독자적인 정책을 결정할 수 있었던 범위는 제한적이었다. 특히 외교와 국방, 치안 및 주요 정치 현안에서는 웨스타시아의 영향력이 강하게 작용했으며, 유고랜드 공화국 정부가 웨스타시아의 의사에 반하는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사실상 어려웠다.

1958년부터 1979년까지는 총독의 권한이 특히 강했으며, 총독은 유고랜드 정부와 행정기관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이에 따라 대통령과 정부, 의회가 존재했음에도 실질적인 권력은 웨스타시아의 감독을 받는 총독부에 집중되는 구조가 형성되었다.

3.2. 유고랜드 총독부 [편집]

웨스타시아는 유고랜드를 직접 병합하는 대신 총독을 파견하여 현지 정부를 감독하는 방식으로 통치하였다. 총독은 웨스타시아 정부가 임명했으며, 유고랜드의 주요 행정 및 정치 결정에 개입할 수 있는 광범위한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총독부는 유고랜드의 중앙정부와 별도의 행정기관처럼 존재하면서도 실제로는 양 기관 사이의 상위 감독기관에 가까운 역할을 수행하였다. 유고랜드 정부가 법률이나 주요 정책을 추진할 경우 총독부의 승인을 받거나 그 의사를 고려해야 했으며, 군사, 외교 분야에서는 특히 웨스타시아의 통제가 직접적으로 이루어졌다.

이러한 체제는 유고랜드의 행정조직을 완전히 해체하지 않으면서도 실질적인 통치권을 웨스타시아가 행사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따라서 당시 유고랜드 공화국은 형식적으로는 독립된 공화국이었지만, 실제 정치체제는 웨스타시아가 임명한 총독을 중심으로 한 간접적인 식민 통치에 가까운 괴뢰국 형태로 운영되었다.

1979년 이후에는 총독의 직접적인 통치가 약화되고 군부의 영향력이 더욱 커지면서 통치 방식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특히 1980년부터 1984년까지는 군부독재 체제가 강화되었으며, 1983년부터는 총독 역시 웨스타시아 정부의 직접적인 감독을 받는 형태로 바뀌었다. 이러한 체제는 1984년 웨스타시아가 마테르 전쟁에서 패배하고 붕괴하면서 함께 종식되었다.

4. 정치 [편집]

유고랜드 공화국은 외형상 독립된 공화국의 제도를 유지했으나, 실제 정치권력은 웨스타시아와 연결된 총독부와 군부에 집중되어 있었다. 대통령과 정부, 의회가 존재했지만 이들은 독자적인 국가 운영보다는 웨스타시아의 정책을 국내에 적용하는 역할에 가까웠다.

특히 총독은 유고랜드 공화국의 정치권력 전반을 감독하는 위치에 있었다. 유고랜드 공화국 정부의 인사와 주요 정책에는 총독부의 영향력이 작용했으며, 외교, 국방, 치안과 같이 정권의 존립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분야에서는 유고랜드 정부가 독자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범위가 매우 좁았다.

이러한 구조 때문에 유고랜드 공화국의 정치에서는 공식적인 정부기관과 실제 권력기관 사이에 상당한 괴리가 존재했다. 헌법과 법률에 따라 운영되는 국가기관이 존재했음에도 실질적인 정치적 권한은 웨스타시아가 임명한 총독과 그를 뒷받침하는 군부에 집중되어 있었던 것이다.

4.1. 역대 유고랜드 공화국 총독 [편집]

4.2. 역대 유고랜드 공화국 대통령 [편집]

5. 평가 [편집]

5.1. 괴뢰국으로서의 성격 [편집]

유고랜드 공화국의 가장 큰 특징은 독립국의 외형과 외세에 의한 실질적인 통치가 동시에 존재했다는 점이다.

상술했듯이 웨스타시아는 유고랜드를 자국 영토로 직접 편입하지 않고 별도의 공화국으로 존속시켰다. 따라서 유고랜드에는 자체적인 정부와 행정조직이 존재했고, 주민들 역시 일상적인 행정과 사회생활을 대부분 자국의 기관을 통해 수행했다.

그러나 국가의 존립과 직결되는 문제에서는 웨스타시아의 영향력이 절대적이었다. 총독은 유고랜드의 정치권력을 감독하는 가장 높은 위치에 있었으며, 웨스타시아군 역시 유고랜드에 주둔하면서 정권의 군사적 기반을 제공하였다.

때문에 유고랜드 공화국은 일반적인 위성국보다도 식민지와 독립국 사이에 위치한 독특한 간접지배 체제로 분류되기도 한다. 특히 본국과 유고랜드가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웨스타시아가 직접 병합 대신 괴뢰국을 이용한 것은 행정 및 군사적 부담을 줄이면서 전략적 영향력을 확보하기 위한 방식이었다고 볼 수 있다.

5.2. 정치적 억압과 권위주의 [편집]

괴뢰국 시기의 정치체제는 시간이 흐를수록 권위주의적인 성격이 강해졌다. 초반부는 정부와 의회 등 기존 국가기관이 일정한 형태로 유지되었지만, 실질적인 정치적 자율성은 제한되어 있었다. 정치세력 역시 웨스타시아와 협력하는 세력과 이에 반대하는 세력으로 갈리면서 정상적인 정치적 경쟁이 이루어지기 어려웠다.

특히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총독부와 시민사회 사이의 충돌이 빈번해졌고, 정치적 불안정이 심화되었다. 6.13 시민혁명, 유고랜드 총독부 방화 사건 등 1970년대 들어 여러 차례 발생한 폭력 시위, 테러와 암살 사건들이 이러한 사회적 불만이 표면화된 대표적인 사례다. 이후 유고랜드-웨스타시아 정치범수용소 건설과 각종 정치적 사건이 이어지면서 기존 체제에 대한 불신도 확대되었다.

1980년대에는 이러한 경향이 더욱 심해졌다. 군부의 정치적 영향력이 강화되고 국가안보와 치안 유지를 골자로 한 통제가 확대되면서 유고랜드 공화국은 사실상 군사독재에 가까운 체제로 변화하였다. 이런 연유로 시간이 지날수록 자체적인 권위주의적 통치구조까지 강화되었다는 점에서 좀 많이 거시기 하다.

5.3. 전쟁, 그리고 군사적 종속 [편집]

유고랜드 공화국은 1차 랜드 전쟁과 제2차 랜드 대전에서 유고랜드는 웨스타시아 측의 주요 전쟁 수행지역 가운데 하나로 이용되었다. 특히 2차 랜드 전쟁에서는 1973년 사비에트군의 공격과 동년도 12월 루이나, 플로렌시아 원정군의 상륙으로 인해 유고랜드가 직접적인 전쟁터가 되었다.

이는 유고랜드가 독자적인 외교, 군사정책을 결정할 수 없었던 현실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기도 하다. 유고랜드 주민들은 자국의 의사와 무관하게 랜드해협의 국제적 분쟁에 휘말렸으며, 괴뢰국 시기 동안 대규모 징병과 사회경제적 부담을 감당해야 했다.

1983년 시작된 마테르 전쟁 역시 비슷한 문제를 보여준다. 당시 유고랜드 공화국은 웨스타시아와 함께 전쟁에 참여했고, 이 시기 또한 적지 않은 수의 인원이 징병되어 많은 사상자와 함께 유고랜드사에 큰 상흔을 남겼다.

5.4. 경제 발전 [편집]

괴뢰국 시기에 이루어진 경제적 발전은 오늘날에도 평가가 엇갈리는 부분이다.

당시 버블 경제를 겪고 있던 웨스타시아의 통치 아래에서 유고랜드에는 산업시설과 교통망이 확충되었으며, 산업철도, 산 에투알테 공항, 시디벨항 재건축 등 국가 기반시설 건설 사업도 진행되었다. 아인테무센트, 다스트게단 등 일부 도시에서는 산업화와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되었고, 이후 독립 유고랜드의 경제발전에 활용할 수 있는 기반도 일정 부분 남겨졌다.

그러나 이러한 발전을 곧바로 웨스타시아의 통치가 유고랜드에 긍정적이었다는 근거로 사용하는 데에는 반론이 존재한다. 당시의 경제정책은 유고랜드 자체의 장기적인 경제적 자립보다는 웨스타시아의 전략적, 군사적 필요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수차례 전쟁을 거치면서 경제가 반복적으로 군사동원에 편입되었고, 전쟁으로 인한 피해 역시 상당했다. 따라서 괴뢰국 시기의 산업화와 기반시설 확충은 인정하면서도 그 발전이 누구를 위한 것이었으며 어떠한 정치적 조건에서 이루어졌는가를 별도로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 학계의 공통적인 점심이다.

5.5. 문화와 언어 [편집]

웨스타시아의 지배는 유고랜드의 문화와 언어에도 상당한 흔적을 남겼다.

괴뢰국 시기 유고랜드에서는 한국어와 아랍어뿐만 아니라 스페인어, 부르고어, 하노어 등이 국가기관과 사회에서 사용되었다. 이 과정에서 유고랜드 아랍어의 경우 고랜드 아랍어와 방언연속체 관계가 잠깐 깨지기도 하였다.

특히 행정과 교육 분야에서는 웨스타시아의 영향이 강하게 나타났으며, 도시의 건축과 행정체계에도 웨스타시아의 흔적이 남았다. 그 대표적인 예시가 메이프릴 에이커스와 현재의 광역행정구역 체계 및 시정촌제.

그러나 비교적 짧은 지배 기간이었기 때문에 웨스타시아가 유고랜드의 기존 문화를 완전히 대체한 것은 아니었다. 한국계 주민과 아랍계 주민은 각각 기존의 종교, 생활문화를 유지했고, 결과적으로 유고랜드 사회는 웨스타시아의 문화와 기존 유고랜드 문화가 살짝 혼합된 형태로 발전했다.

5.6. 사회적 통제와 시민생활 [편집]

괴뢰국 시기의 일반 시민들은 전쟁 시기를 제외하고 나름 일상적인 사회생활을 이어갔다. 특히 전쟁이 없는 시기에는 도시를 중심으로 생활수준이 개선되고 새로운 산업과 교통망이 들어서면서 근대적인 도시생활이 확대되었다. 그러나 정치, 언론, 집회, 결사의 자유와 시민권은 제한되어 있었으며, 정부와 군부에 대한 비판은 상당한 위험을 동반해야 했다.

5.7. 독립 이후 [편집]

1984년 웨스타시아가 붕괴하고 유고랜드가 독립하면서 괴뢰국 시기에 대한 역사적 평가도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실제로 처벌받는 인원은 극소수였으나, 독립 직후에는 웨스타시아에 협력했던 정치인, 군인, 관료에 대한 책임 문제가 제기되었다. 또한 괴뢰국 시기의 행정, 경제적 유산을 어디까지 계승할 것인지도 문제가 되었다. 반면 모든 협력자를 일괄적으로 반역자로 규정하기에는 당시의 복잡한 정치적 상황과 생존을 위한 협력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도 존재했다.

5.8. 총평 [편집]

유고랜드 공화국은 오늘날 유고랜드 역사에서 가장 논쟁적인 시기 가운데 하나로 평가된다. 이 시기를 바라보는 관점은 크게 웨스타시아의 지배와 정치적 억압을 중심으로 보는 관점과, 당시 이루어진 산업, 교통, 행정상의 발전까지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관점으로 나뉘어 있다.

다만 유고랜드 공화국이 형식적으로 독립국의 형태를 유지했다고 해서 실질적인 독립국으로 평가하기는 어렵다는 데에는 대체로 이견이 적다. 대통령과 정부, 의회 등의 국가기관이 존재했지만 웨스타시아가 임명한 총독과 군부가 국가의 주요 의사결정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특히 외교와 국방을 비롯한 핵심 분야에서 유고랜드의 자율성은 크게 제한되어 있었다.

6. 사건 사고 [편집]

7. 미디어 [편집]

8. 둘러보기 [편집]

[1] 웨스타시아의 괴뢰화 직후 대통령령(Decreto Presidencial) 제209호 '유고랜드의 국호를 고쳐 유고랜드 공화국으로 칭하는 건(Cambio del nombre de Yugoland a República de Yugoland)'이 발령되면서 이름이 '유고랜드 공화국'으로 변경되었다.[2] 정확히는 국기가 아니라 유고랜드 총독부의 기(旗)다. 정확하게 국기에 관해서 정해진 법은 없었으며, 대내외적으론 총독기를 더 내세우긴 했다. 다만 국민들 사이에선 반발의 의미로 총독기를 쓰지 않고 구 유고랜드 국기(총독기에 웨스타시아 국기 대신 태극기를 쓴 버전)를 사용했다.[3] 적색내백십자상홍하현기우삼금도기(赤色內白十字上紅下玄旗右三金刀旗)란 뒤지게어려운 이름이 공식 명칭이나 보통은 적색삼금도기, 또는 삼금도기, 더 줄이면 적 뭐시기(...)로 불리기도 했다. 일부 영연방 국가들의 형식처럼 좌상단에 웨스타시아 국기가 배치되어 있으며 단결, 결속, 화합을 뜻하는 삼금도가 우측에 위치한다.[4] 뭐적지[5] 당시 전체 인구의 57퍼센트를 차지했다.[6] 전체 인구의 2~3%에 불과했으나 지배층, 대지주, 부유층들이 주류였다. 1984년 7월 18일 패전 이후 대부분 라 마베라로 철수, 귀국. 그 중 잔류를 원하는 극소수 웨스타시아인들 또한 유고랜드군에 의해 결국 본국으로 추방되었다. 하지만 한국인(또는 아랍인) 혼혈인 척하며 몰래 남은 웨스타시아인들도 있었다.[7] 본국과 달리 유고랜드는 총독이 입법, 사법, 행정의 전권을 행사하며 심지어 웨스타시아 정부의 통제도 받지 않았다. 다만 1980년대부터 행정 일원화 정책으로 총독의 권한이 제한되었으며, 1983년에는 정부의 관리감독 하에 두었다.[8] 괴뢰국 통치기 시작[9] 문화 통치기 시작[10] 탄압 통치기 시작[11] 징병제 실시[12] 유고랜드 독립[13] 부르고어, 하노어, 스페인어 셋 다 이 표기를 사용한다.[14] 웨스타시아의 유고랜드 괴뢰국화의 시발점.[15] 총독부 설치 및 행정권 이관 및 웨스타시아 지배기 시작[16] 유고랜드 공화국 멸망